1월 24 2005
연필을 깍으면서
난 아직도 사무실에서 왠만한 공문서는 컴퓨터로 작업하고 그 나머지 문서로 남길 것이외에는 전부 연필을 사용하여 기록한다. 왜 다른 사람들이 연필로 쓰느냐고 물으면 웃으면서 간단하게 말한다. ‘편하니까’ 그 다음 말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나온다.’샤프로 쓰면 편하잖아요’ 물론 샤프로 쓰면 연필깍는 수고도 들 수 있고 글을 쓰다 심이 부러지면 샤프 ‘머리’를 콕콕 누르면서 생각의 흐름을 끊지않고 글쓰는 일을 편하게 도와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심이 부러질 때나 심이 굵어져 글쓰기가 힘들어지면 책상서랍에서 문구용 칼을 꺼내 휴지통을 책상 아래 바쳐놓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연필을 깍는다. 글이란게 물 흐르듯이 잘 써지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자 한자가, 한문장을 만든다는게 힘이 든다. 글쓰기가 힘들어지면 책상 아래에 또 휴지통을 바쳐놓고 일부러 새 연필을 꺼내들고 예쁘게 연필심을 깍는다.
연필을 깍으면서 떨어지는 처음의 커다란 덩어리는 바로 휴지통 속으로 차곡차곡 들어가지만 심의 모양을 잡을 때는 떨어지는 아주 얇은 나무조각이 말리면서 휴지통으로 바로 떨어지지 않고 날리면서 바닥을 어지럽힌다. 연필을 다 깍고 나면 이 어지럽혀진 나무부스러기들을 정리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꼭 연필심이 부러져서, 닳아서라기보다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일부러 연필 탓을 하면서 새로 연필을 깍는 것이다.
우리 어렸을 때는 연필이 귀했다. 그때는 흑연이 귀한 시절이라 연필심은 아주 단단하게 만들어 조금씩 닳게 만들었다. 연필이 짧아지면 볼펜자루에 끼워 지금은 볼 수도 없는 몽땅연필을 만들어 사용했다. 글이나 선이 연하게 나오면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면서 쓰던 기억이 새롭다.
학용품도 흔한 시절이 아니어서 책가방은 보따리를 둘둘 말아서 사용하고 필통은 보통 양철로 만들어 이것에 연필을 넣어 하교길에 좋다고 뛰어가는 사내아이들의 등짝에서 다 까먹은 도시락통 속의 수저랑 젓가락과 필통속의 연필들이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부러지는 연필들은 또 볼펜을 등에 메고 몽땅연필이 되었다.
내 아버지는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였다. 산골촌에서 그래도 제법 밥먹고 산다는집 6남매의 둘째로 태어나 큰아버지 중학교 공부때문에 국민학교도 다니다 마치지도 못하고 중퇴를 하였다. 큰아버지나 작은 아버지들은 그래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희생으로 다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도회지로 나와 살림을 꾸렸다.
그런 아버지는 항상 공부에 대한 욕심과 한이 있어 나는 꼭 좋은, 많은 공부를 해야한다고 어린 장남의 연필은 꼭 당신이 정성을 다해 깍아주곤 했다. 아버지는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어린 삼형제의 연필을 정성으로 깍아주고 아이들은 그 옆에 아래목에 배를 깔고 누워 공부를 하곤 했다.
지금도 연필을 깍으면서 내 아버지가 내개 연필 깍아주던 마음을 보려고 한다. 지금 우리 빈이가 자라 또 연필을 쓸 나이가 되면 나는 그 아버지의 마음으로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연필을 깍아줄 것이다. 물론 빈이는 벌써 연필보다는 컴퓨터자판으로 글을 먼저 쓸 것이고 샤프로 글을 쓸 것이고 또 좋은 볼펜으로 글을 쓸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 빈이의 연필을 깍아주려 한다.
1월 26 2005
오래전 일기를 꺼내어보고…
오늘 책장에서 오래전 일기장을 꺼내 보았다. 옛날 동아리시절의 날적이들을 모아 내가 간직하고 있는데 벌써 십년도 훌쩍 지나버린 내삶을 조그만 기록들이다.
이른 새벽부터 내린 비가 아직까지 내린다. 창문 틈새로 배어드는 습기로 온몸이 나른하다. 날씨탓인지 분위기탓인지 커피자판기 앞은 사람들로 붐비고 책상 옆자리에는 피곤한지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데 신문하나 귀퉁이의 야한 사진하나가 다리만 남겨놓고 잘려 나갔다.
지금 고향에는 적절한 봄비에 못자리 준비를 할 것이다. 엄마 생일이 다음주인데 내려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가 오면 무슨 까닭인지 집생각이 난다. 벌써 한달이 넘게 지났지만 잠깐 다녀온 일외에 가족과 함께 하루를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얼마전에 낳은 송아지는 잘 자라고 있는지 짬을 내서 내려갔다와야겠는데 내려갈 때의 부푼 마음보다 떠나올 때의 서운함이 커서인지 잘 내려가지를 못한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려는가? 자취집 거실에는 먼지앉은 물건들이 가득히 자리를 차지하고 쓰레기통은 잡동사니로 풍성하다. 멀리 인덕관 앞의 가로등은 대낮을 훤히 밝히고 미라보다리에는 우산 쓴 연인들, 멀리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소리패의 연습하는 북소리는 한가한 일요일 오후의 또 다른 풍경이다. 소슬바람이 불어 부딪힌 나무들이 삐걱삐걱 거친 소리를 내고 세딸아이의 아버지는 또 어디를 가려고 나서는지…
또 빗방울이 떨어지려한다. 그러나 비온뒤 굳은 땅에 고인물에 맑고 푸른 하늘과 눈이 시려울 해가 비추일 것이다. 지금 산에는 온통 싱그른 푸르름인데 뿌리는 빗살에 하얀 안개가 끼어 자욱하게만 보인다. 하늘다리를 보려면 우리는 소나기를 맞아야 한다. 사람들이 이 봄날의 한순간을 잡으려 한다. 오늘은 아마도 흑백사진이 좋으리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붙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에 지친다.
청소년축구 한일전을 보려고 시간을 때우려 옛날 일기를 꺼내보았는데 정말로 옛날의 기억들은 언제나 입가에 웃음을 지우는 일들이 그때는 왜 그랬을까하는 마음이… 이제 축구보러 가야지!
By vinipapa • 엄마아빠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