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기를 꺼내어보고…

오늘 책장에서 오래전 일기장을 꺼내 보았다. 옛날 동아리시절의 날적이들을 모아 내가 간직하고 있는데 벌써 십년도 훌쩍 지나버린 내삶을 조그만 기록들이다.

1993년 3월 어느날
이른 새벽부터 내린 비가 아직까지 내린다. 창문 틈새로 배어드는 습기로 온몸이 나른하다. 날씨탓인지 분위기탓인지 커피자판기 앞은 사람들로 붐비고 책상 옆자리에는 피곤한지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데 신문하나 귀퉁이의 야한 사진하나가 다리만 남겨놓고 잘려 나갔다.

지금 고향에는 적절한 봄비에 못자리 준비를 할 것이다. 엄마 생일이 다음주인데 내려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가 오면 무슨 까닭인지 집생각이 난다. 벌써 한달이 넘게 지났지만 잠깐 다녀온 일외에 가족과 함께 하루를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얼마전에 낳은 송아지는 잘 자라고 있는지 짬을 내서 내려갔다와야겠는데 내려갈 때의 부푼 마음보다 떠나올 때의 서운함이 커서인지 잘 내려가지를 못한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려는가? 자취집 거실에는 먼지앉은 물건들이 가득히 자리를 차지하고 쓰레기통은 잡동사니로 풍성하다. 멀리 인덕관 앞의 가로등은 대낮을 훤히 밝히고 미라보다리에는 우산 쓴 연인들, 멀리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소리패의 연습하는 북소리는 한가한 일요일 오후의 또 다른 풍경이다. 소슬바람이 불어 부딪힌 나무들이 삐걱삐걱 거친 소리를 내고 세딸아이의 아버지는 또 어디를 가려고 나서는지…

또 빗방울이 떨어지려한다. 그러나 비온뒤 굳은 땅에 고인물에 맑고 푸른 하늘과 눈이 시려울 해가 비추일 것이다. 지금 산에는 온통 싱그른 푸르름인데 뿌리는 빗살에 하얀 안개가 끼어 자욱하게만 보인다. 하늘다리를 보려면 우리는 소나기를 맞아야 한다. 사람들이 이 봄날의 한순간을 잡으려 한다. 오늘은 아마도 흑백사진이 좋으리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붙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에 지친다.

청소년축구 한일전을 보려고 시간을 때우려 옛날 일기를 꺼내보았는데 정말로 옛날의 기억들은 언제나 입가에 웃음을 지우는 일들이 그때는 왜 그랬을까하는 마음이… 이제 축구보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