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 E-mail Notifier로 부터 리스팅되는 스팸성(내가 정보를 요청했으므로 스팸은 아닌데) 메일의 대부분은 설날 선물용품에 대한 정보성 광고 메일이다. 우리네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어지러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요즘같은 불경기에 설날은 까마득하고 단지 며칠동안 쉴 수 있다는 아니 회사를 안간다는 의미밖에 없는데 대형업체들은 설날은 여전히 물건을 많이 팔 수 있는 좋은 기회인가보다.
시골에선 설날이 되면 엄마가 제일 먼저 바빠진다. 우선 튀밥, 강정, 가래떡, 송편 등 온갖 설날 손님맞이용 음식을 만들고 손수 밤을 새워 짠 왕골 돗자리를 시장에 들고 나가셨다. 이걸 좋은 값에 팔아야 설날에 쓰일 제수를 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삼형제 ‘설치리’를 사고 조카들과 친척 아이들의 세배돈을 준비할 수 있었다.
예전엔 설날이 오는 것을 제일 먼저 알리는 것은 동네마다 찾아다니는 박상(튀밥)장수의 펑하고 터지는 튀밥 튀기는 소리일 것이다. 펑펑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새하얗게 피는 김속을 뛰어다니며 그것을 조금 얻어 먹으려는 아이들과 깡밥(강정)을 만들려고 내어 놓은 쌀, 보리, 콩, 강냉이와 작년에 말려 놓은 가래떡 썰어 놓은 것 등 곡물로 튀겨 부풀릴 수 있는 모든 것이 울긋불긋한 보자기 덮힌 바구니에 담겨 줄을 서 있고 거기에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만이 신이 났다.
우리집은 겨울 농한기가 되면 왕골 돗자리를 밤을 새워 짜서 5일장에 내다 팔았다. 이놈의 왕골은 머리위와 줄기, 잎이 톱니모양으로 날카로와 보드라운 살결이 스쳐만가도 베어 피를 보기 일수였다. 그래서 시원할 때 긴팔 옷을 입고 이슬이 걷히기 전에 얼른 빼어 왕골머리를 잘라 한단 한단 묶어 개울가에 씻어 말려놓고 새벽에 풀먹이러 보내 놓은 소를 찾으러 산으로 갔다.
씻어 말린 왕골은 좋은 놈은 어른 키보다 훨씬 커서 어른들은 한명이 왕골 껍질을 6면 정도로 벗겨내고 아이들은 팔이 짧아 두명이서 조를 짜서 서툰 솜씨로 만들었지만 손이 모자라 이것도 도움이 되었다. 서둘러 먹은 아침에 한참을 지났어도 아직 해는 아직도 중천인데 저쪽 서쪽 하늘에 소나기 먹구름이라도 끼일라치면 얼른 해뜰 때 잔디 위에 널어 놓은 왕골 껍질을 걷어러 서둘러 서둘러 뒷동산에 숨이 차게 뛰어 올라갔다. 이놈이 비를 맞으면 표면에 울긋불긋 얼룩반점이 생겨 똑같은 노력에도 반값도 못받았다.
서쪽 하늘에 노을이 물들 때쯤 한아이는 또 점심에 풀어 소를 찾아 뉘엿 뉘엿 지는 해를 보며 내려오고 한아이는 여름 좋은 볕에 말린 왕골을 걷어 내어 수줍은 처녀의 긴머리 빗듯이 가지런히 참빗으로 빗어 거풀을 벗겨내고 모아서 한단 한단을 곧추 세워 놓고 이놈을 여럿이 묶어서 어린 아이가 할아버지 상투 뽑듯이 키 큰순으로 위에서 뽑아 올려 등급을 분류해서 서늘한 곳에 잘 말려 보관해 놓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 되면 소죽을 끓이려고 사랑방에 군불을 넣어 놓고 그 속에다 고구마나 밤을 넣어 밤이 탁탁하고 터지는 소리에 잘 익혀 구워내어 한겨울 저녁 간식거리를 만들어 놓고 뜨뜻한 아랫목에 부모님은 부러지지 않게 찬물에 불려 놓은 왕골을 장단에 맞춰 아버지는 한개 한개 돗자리틀에 메어 놓은 씨줄날줄 사이에 찔러 넣고 엄마는 쿵덕쿵덕 이쪽 저쪽으로 틀을 뒤집어 찍으며 그 겨울 밤을 지샜다.
몇 천개를 찔러 넣어 한장를 만드는데 열대여섯 시간을 찍어야 겨우 세장. 이것을 모아서 5일장에 내다 팔면 그래도 새파란 만원짜리 몇 장을 움켜쥐고 요놈은 제사상, 요놈은 설치리, 요놈은 세배돈으로 쪼개어서 며칠 만에 따라온 아들을 이끌어 시장옆 온통 붉은 색의 소방서 앞에 있는 조그만 중국집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도 한그릇을 사주셨다.
이제 중국산 돗자리가 들어온지도 십여년도 훌쩍 넘었고 그 노동의 댓가로 부모님의 팔과 오래도록 앉아 있어 생긴 관절염 뿐이지만 그래도 아직도 사랑방 백열등 아래서 돗자리 짜는 그 겨울의 소리와 설을 맞이하기 위한 며칠 동안의 그 아련한 풍경들이 그리워진다.
1월 27 2005
설날은 E-mail로부터 먼저 온다
요즘 아침 E-mail Notifier로 부터 리스팅되는 스팸성(내가 정보를 요청했으므로 스팸은 아닌데) 메일의 대부분은 설날 선물용품에 대한 정보성 광고 메일이다. 우리네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어지러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요즘같은 불경기에 설날은 까마득하고 단지 며칠동안 쉴 수 있다는 아니 회사를 안간다는 의미밖에 없는데 대형업체들은 설날은 여전히 물건을 많이 팔 수 있는 좋은 기회인가보다.
시골에선 설날이 되면 엄마가 제일 먼저 바빠진다. 우선 튀밥, 강정, 가래떡, 송편 등 온갖 설날 손님맞이용 음식을 만들고 손수 밤을 새워 짠 왕골 돗자리를 시장에 들고 나가셨다. 이걸 좋은 값에 팔아야 설날에 쓰일 제수를 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삼형제 ‘설치리’를 사고 조카들과 친척 아이들의 세배돈을 준비할 수 있었다.
예전엔 설날이 오는 것을 제일 먼저 알리는 것은 동네마다 찾아다니는 박상(튀밥)장수의 펑하고 터지는 튀밥 튀기는 소리일 것이다. 펑펑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새하얗게 피는 김속을 뛰어다니며 그것을 조금 얻어 먹으려는 아이들과 깡밥(강정)을 만들려고 내어 놓은 쌀, 보리, 콩, 강냉이와 작년에 말려 놓은 가래떡 썰어 놓은 것 등 곡물로 튀겨 부풀릴 수 있는 모든 것이 울긋불긋한 보자기 덮힌 바구니에 담겨 줄을 서 있고 거기에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만이 신이 났다.
우리집은 겨울 농한기가 되면 왕골 돗자리를 밤을 새워 짜서 5일장에 내다 팔았다. 이놈의 왕골은 머리위와 줄기, 잎이 톱니모양으로 날카로와 보드라운 살결이 스쳐만가도 베어 피를 보기 일수였다. 그래서 시원할 때 긴팔 옷을 입고 이슬이 걷히기 전에 얼른 빼어 왕골머리를 잘라 한단 한단 묶어 개울가에 씻어 말려놓고 새벽에 풀먹이러 보내 놓은 소를 찾으러 산으로 갔다.
씻어 말린 왕골은 좋은 놈은 어른 키보다 훨씬 커서 어른들은 한명이 왕골 껍질을 6면 정도로 벗겨내고 아이들은 팔이 짧아 두명이서 조를 짜서 서툰 솜씨로 만들었지만 손이 모자라 이것도 도움이 되었다. 서둘러 먹은 아침에 한참을 지났어도 아직 해는 아직도 중천인데 저쪽 서쪽 하늘에 소나기 먹구름이라도 끼일라치면 얼른 해뜰 때 잔디 위에 널어 놓은 왕골 껍질을 걷어러 서둘러 서둘러 뒷동산에 숨이 차게 뛰어 올라갔다. 이놈이 비를 맞으면 표면에 울긋불긋 얼룩반점이 생겨 똑같은 노력에도 반값도 못받았다.
서쪽 하늘에 노을이 물들 때쯤 한아이는 또 점심에 풀어 소를 찾아 뉘엿 뉘엿 지는 해를 보며 내려오고 한아이는 여름 좋은 볕에 말린 왕골을 걷어 내어 수줍은 처녀의 긴머리 빗듯이 가지런히 참빗으로 빗어 거풀을 벗겨내고 모아서 한단 한단을 곧추 세워 놓고 이놈을 여럿이 묶어서 어린 아이가 할아버지 상투 뽑듯이 키 큰순으로 위에서 뽑아 올려 등급을 분류해서 서늘한 곳에 잘 말려 보관해 놓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 되면 소죽을 끓이려고 사랑방에 군불을 넣어 놓고 그 속에다 고구마나 밤을 넣어 밤이 탁탁하고 터지는 소리에 잘 익혀 구워내어 한겨울 저녁 간식거리를 만들어 놓고 뜨뜻한 아랫목에 부모님은 부러지지 않게 찬물에 불려 놓은 왕골을 장단에 맞춰 아버지는 한개 한개 돗자리틀에 메어 놓은 씨줄날줄 사이에 찔러 넣고 엄마는 쿵덕쿵덕 이쪽 저쪽으로 틀을 뒤집어 찍으며 그 겨울 밤을 지샜다.
몇 천개를 찔러 넣어 한장를 만드는데 열대여섯 시간을 찍어야 겨우 세장. 이것을 모아서 5일장에 내다 팔면 그래도 새파란 만원짜리 몇 장을 움켜쥐고 요놈은 제사상, 요놈은 설치리, 요놈은 세배돈으로 쪼개어서 며칠 만에 따라온 아들을 이끌어 시장옆 온통 붉은 색의 소방서 앞에 있는 조그만 중국집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도 한그릇을 사주셨다.
이제 중국산 돗자리가 들어온지도 십여년도 훌쩍 넘었고 그 노동의 댓가로 부모님의 팔과 오래도록 앉아 있어 생긴 관절염 뿐이지만 그래도 아직도 사랑방 백열등 아래서 돗자리 짜는 그 겨울의 소리와 설을 맞이하기 위한 며칠 동안의 그 아련한 풍경들이 그리워진다.
By vinipapa • 엄마아빠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