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독 이야기

요새는 대부분이 김장을 하지않고 조금씩 사서 먹거나 김장을 한다해도 몇 포기만을 담아 정말 없어서는 안될 주식으로서가 아니라 특식의 찌게거리나 좋은 고기반찬과 기름진 음식의 느끼한 맛을 보조해주는 반찬의 양념 정도로만 먹는 것 같다.

첫서리가 내리기 전에 텃밭에 심어놓은 배추를 수확하는 것으로 겨울준비가 시작되었다. 혹시라도 일찍 서리가 내리면 맞히지 않게하기 위해 씌어 놓았던 볏집을 한꺼풀씩 걷어내고 나면 통통하게 살이 찬 실한 배추들이 볏짚에 한단한단 잘 묶여져 있다. 하루종일 배추를 뽑아 뿌리를 잘라내고 그중에서 실한 놈들을 골라 김장용으로 따로 놓고 사이좋게 한골씩 심어 놓은 무를 뽑아서 무우채를 잘라내어 가지런히 뉘어 놓고 나면 짧은 겨울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쯤에 끝이 난다.

텃밭 한켠에 깊게 파놓은 구덩이에 볏짚을 깔고 옆으로는 둘러치고 배추, 무를 사이좋게 쌓아 놓고 볏짚을 덮고 보드라운 흙으로 구덩이를 덮어 봉긋하게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한켠에 숨구멍을 뚫어 놓아 겨우내 꺼집어 내어 먹기 쉽게 해놓고 여기에 또 짚으로 구멍을 단단히 막고 나면 김장준비가 시작되었다.

새파란 배추잎을 한꺼풀씩 벗겨내어 몇 장씩 모으고 어제 잘 잘라모아둔 무청을 굴비묶음처럼 짚으로 묶고 처마밑에 걸어두어 씨레기를 만들고 어제부터 엄마의 손맛?으로 적당히 풀어 놓은 소금물에 봄날 어린 병아리색의 배추들을 4등분하여 하나씩 담가 두었다. 엄마의 손맛?과 절임의 시간이 김치맛이 되었다. 적당히 늘어진 배추에 잘 끓여서 걸러놓은 장국과 양념을 준비하여 배춧잎 한장한장 사이에 찔러넣고 잘 싸서 김장독에 한켜씩 쌓고 그 위에 겨울 동치미용으로 커다란 무를 몇개씩 올려놓고 숯을 넣어 커다란 옹기김장독에 넣어 우물가 옆에 김치독을 묻으면 김장도 끝이나고 한겨울 반찬걱정을 들게 되었다.

우리가 가을걷이를 시작할 쯤이면 옆동네 오직 한집만 사는 옹기골에선 김장독 만들 준비로 바빴다. 아버지 두분이 친구이고 아들 둘도 친구여서 집에 놀러가면 집앞에서부터 깨어진 옹기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옆에선 장작더미가 산처럼 쌓여져 있고 굴뚝에서 새하얀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아직 유약도 바르지 않은 옹기들이 그늘에 마르고 있고 한곳에선 물레에 옹기를 올려 놓고 열심히 물레질을 하면서 옹기를 만들고 있었다. 재미로 한 두개 만들어 보지만 역시 장인의 손앞에 어린아이의 옹기들은 삐뚤빼뚤 모양도 잡지 못하지만 이것 역시 재미있는 놀이였다.

직접 만든 못난이 옹기를 집어 들고 유약을 통에 풍덩 담가 돌리면서 유약을 발라 말리고 다음 옹기구울 때 귀퉁이 한곳에 넣어 구워 달라고 부탁를 하고 왔다. 엄마따라 십리를 걸어가서 잘 생긴 놈으로 김장독을 사서 골라올 때 저번의 그놈을 가져와서 내 김치통이라며 몇 포기를 따로 넣어놓고 내어 먹곤 했던 기억들이 새삼스럽다.

옹기는 물을 담아두면 조금씩 새어나오는 토기보다는 조금 낫고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는 도자기보다는 못한 물건이지만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었다. 굽는 온도가 높지 않아 고령토, 백토안의 금속성질을 띈 성분들이 유리질화 되지 못해 강건하지도 못하고 색깔도 우충충했다. 그러나 그 점토속의 다공질들이 외부와 통기가 되게하여 김치, 장 등 산소가 적당히 필요한 음식에는 절묘하게 쓰임새가 맞았다.

요즘은 김장을 해도 좋은 김치냉장고가 있어 옹기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있어도 겨우 간장이나 된장을 담아 두고 쓰거나 이것도 벌써 공장에서 생산된 간장, 된장이 프라스틱 통에 담겨 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튼튼하고 화려해지고 네모짜리로 규격화된 지금의 모습들보다 보관하기 힘들고 무겁고 우충충한 색깔에 멋스럽지 못한 이놈들이 앞마당 옆에 가지런히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엄마, 동생들처럼 그렇게 제자리에서 제 역할에 맞는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