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가면…

설날에 촌에 다녀왔습니다. 무심코 매일 지나쳐 보이는 벽시계가 문득 눈에 들어왔습니다. 벌써 30년이 훌쩍 넘어버린 일본 Seiko사의 벽시계입니다.

빈이아빠가 태어나기 전에 빈이 할아버지, 할머니 결혼선물로 집을 분가하면서 받은 시계인데 한번은 테옆을 너무 세게 감아 터져버려서 수리한 이후로 근 30년 이상을 그렇게 그 자리에서 밥만 주면 제일을 묵묵히 하는 그런 친구입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빛바랜 나무판과 칠이 벗겨진 곳, 무슨 이유로 조금씩 깨어진 나무조각 틈들이 누가 봐도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무언가를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데…

어제는 큰엄마 병문안을 갔다 왔습니다. 그제 저녁에 빈이 할머니께서 전화를 해서 큰엄마가 큰 수술을 해서 가보라고 했습니다. 벌써 나이가 칠순인데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요즘의 날씨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바깥의 찬기운을 쐬시고 혈관이 막혀 심장수술을 하셨답니다.

어렸을 때부터 큰엄마는 빈이할머니가 농사 짓는다고 바빠서 빈이아빠를 키우셨습니다. 근 10여년을 같이 사시면서 키우시다 큰집이 도회로 이사를 가면서 매해 명절에나 찾아갈 수 밖에 없는데…

빈이아빠가 큰 수술을 받을 때도 그 먼길을 하루만에 찾아오셔서 눈물로 지켜보시던 때가 어꺼제 같은데 벌써 15년이 훌쩍 넘어버리고 이제는 손녀 시집가기를 기다리는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세월이 가는 것을 어쩔 수는 없지만 시골집의 시계처럼 외관이 낡고 해도 계속적으로 관리만 해주면 언제까지라도 같이 있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벌써 세월은 그렇게 한가하게 그 자리를 지키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언제 어떻게 돌아가실지 몰라 오늘 안뵈면 안될 것 같아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다녀왔습니다. 물론 빈이도 큰할머니께 무지 많은 재롱을 피우다 왔습니다. 건강하게 사시다가 편안히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