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달이기

어제는 빈이엄마가 요새 빈이아빠 몸이 안좋아 보인다고 시장에 가서 실한 놈으로 인삼을 사다가 빈이이모네에서 집안에서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약탕기를 가져와서는 밤새도록 인삼을 달인다고 하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집안이 약냄새로 가득합니다.

빈이아빠는 속이 차서 인삼 등과 같은 더운 음식이 좋답니다. 빈이할머니도 예전에도 빈이아빠 공부할 적에 홍삼이나 촌에서 가져온 벌꿀에 인삼을 잘게 잘라 재어 먹곤 하였습니다. 빈이아빠 동생 둘은 몸이 열체질이라 꿀이나 인삼을 먹으면 발열로 인해 근처에도 못왔습니다.

지금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비타민, 철분제, 종합 비타민제 같은 것도 많고 조금만 금전적인 투자만 하면 되는데 굳이 이렇게 한약을 달여 먹이려는 것은 약 효응도 중요하겠지만 개인에게 맞는 약과 정성으로 가족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기위해서라고 봅니다.

몇 주전에 20여년만에 우리 친구들이 만났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그 오랜동안 가슴에만 간직한 추억들이 이 만남을 통해 몇 십년동안 사회생활로 무의식적으로 생겨버린 본능적인 자기방어적 행동도 어느덧 사라지고 정말로 오랜만에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모임이나 단체는 오늘이나 내일, 미래에 대한 목적과 어떤 대상을 매개체로 만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리 13회 동창회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결과로써 정말로 오랜만에 어렵게 만나서 오늘과 내일의 친목과 우정을 나누기 위해 이 무형의 공간에 같이 모여 살아간다고 봅니다.

처음 카페에 가입하고 활동없던 친구들로 동창회를 계기로 여기에 들러 인사를 했는데 근래에는 친구들이 그 열정이 많이 식어버린 듯합니다. 카페지기와 몇 친구들의 안부 인사와 좋은 글들이 자주 올라오지만 읽히는 것은 몇 개뿐이고 그 노력에 대한 댓가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찾아오더라로 인사정도는 남기는 것이 어떨지요.

요새는 시절이 좋아 약탕기에 전기만 꽂아두면 기기가 알아서 좋은 약을 만들어 내지만 가족이 한약을 달이는 마음은 약을 넣고 밤새도록 졸리운 눈을 부벼가면서 불을 적당히 조절하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약재가 서로 어우러져 한개의 약재만이 낼 수 없는 내몸에 좋은 약이 된다고 봅니다.

단순히 몇 십년만에 친구를 만났고 좋은 시간을 가지고 언제든지 찾아오면 나를 위해 이 공간이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내 조그만 노력이 스며들어 조금씩 약재들의 약기운들이 좋은 약을 만들듯이 우리 친구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이 좋은 공간의 약재로 쓰일 수 있도록 친구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벌써 잔인한 사월은 지나가고 계절의 여왕인 오월이 옵니다. 친구들 열심히 살면서 언젠가가 될 내일 또 크게 한번 뭉칩시다. 그래서 또 못다한 이야기를 밤새워 나누자구요. 그냥 잔인한 사월이 끝나가는 마지막 날에 맘이 싱숭생숭해서 주제넘게 글자 한자 남겨봅니다.